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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의 목적은 ‘과정’ 191205
    카테고리 없음 2020. 2. 7. 15:41

    언어의 온도 이기주 250p~251p

    “이들의 이야기처럼, 우린 목적지에 닿을 때보다 지나치는 길목에서 더 소중한 것을 얻곤 한다.
    어쩌면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도착’이 아니라 ‘과정’인지 모른다.”
    —————————————————

    여행 가고 싶다. 멀리 가고 싶다. 이왕이면 기내식이 두 번 이상 나오는 곳으로 말이다. 혼자라도 좋다. 먼 나라에서 열심히 걸어 다니는 상상을 하는 요즘이다. 결혼을 하며 여행이 뜸했다. 친구는 남편과 오스트리아에 가기로 했단다. 부러웠다. 아쉽게도 같이 사는 사람은 복잡한 곳을 싫어하고 휴양지, 패키지여행을 선호한다.

    이십 대 초반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갔었다. 처음 간 외국이었다. 짧다면 짧은 7개월 동안 이방인으로 지내며 다양한 희로애락을 느꼈다. 한국에선 운이 좋게도 비슷하게 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지만, 그곳에선 인종차별부터 시작해 서러운 일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항상 맘속에 경계심을 갖고 지냈고, 내게 애증의 나라가 되었다. 풍경은 엄청나게 예뻐도, 절대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이 어찌나 신이 나던지 콧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경유를 두 번이나 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복학 후 주변에서 뉴질랜드가 그립진 않은지 물었다. 대답은 “아니!”였다. 한 십 년 후에나 그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상 속에서 지쳐도, 자유로웠던 그 시간이 애틋하게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꿈에만 가끔 나왔다.

    그로부터 11년이 흘렀다. 예상(?)대로 요즘 자주 뉴질랜드가 생각난다. 당시 공부를 마치고선 전역을 여행하기엔 돈이 넉넉지 않아 일주일만 갔었다. 그런데 문득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보름을 갈걸 그랬다며 소용없는 아쉬운 생각까지 한다.

    요즘 내가 왜 그리 장거리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생각해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 책을 읽어보니 알겠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다음날이 떠올랐다. 지도만 한 장 들고 동네를 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 학원, 마트 등의 위치를 파악하고선 길을 잃어 초등학생에게 도움을 받아 해가 지기 직전 집에 무사히 돌아왔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더 컸다. 한국에서 가기 전부터, 다시 돌아오기까지 모든 일에 직접 부딪혀 해결하는 시간 속에서 많이 성숙해졌다. 몰랐던 걸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들이 그리운가 보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거 같다.

    휴가를 내기도 쉽지 않은 남편은 이런 내게 미안했는지 자신 때문에 하고 싶은 걸 참으며 살지는 말라했다. 그렇게 말해줘 고마웠다. 하지만 걱정이 되니 혼자는 가지 말란다. 같이 갈 친구가 있을지 모르겠다. 다들 가정이 생기면서 무작정 권하기엔 남편들의 눈치가 보인다. 난 혼자서도 잘 돌아다닐 수 있는데, 즐거울 자신까지 있다. 하지만 나 좋자고 여러 사람을 걱정시키는 여행도 편치는 않을 거 같다. 과연 조만간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궁금하다. 여행의 ‘과정’이 매우 고픈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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